누가복음 9장(4),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그중 한 아버지는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기 위해 찾아왔지만,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파송받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패합니다.
4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과거의 경험을 의지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신뢰였습니다. 참된 믿음은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신다’는 신뢰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패역한 세대’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비뚤어지고 교만해진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을 믿는 교만에 빠져 있었고, 주님은 이런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고난의 말씀을 귀에 담아 두라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뒤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44절,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사람들의 놀라움과 찬사를 뒤로하고,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후 계속해서 강조하신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부활 이후에야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이는 고난의 의미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부활의 믿음이 있는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교만한 다툼
앞선 책망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46절 이하에서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로 다투었습니다. 이는 권력 다툼이었고, 교만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부인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48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어린아이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낮고 천한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길이란 교만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어 가장 작은 자를 섬기는 길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부인이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라
요한은 한 가지 일을 떠올립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자, 그것을 금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의 일은 우리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0절,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주의 일꾼이라고 여겼지만, 주님은 편협한 시각을 깨뜨리십니다. 교만에 사로잡힌 마음은 시야를 좁게 만들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제한하게 만듭니다.
참된 제자의 길
제자의 삶은 주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지고, 겸손히 헌신하는 삶입니다. 교만과 이기심, 특권의식에 사로잡히면 결코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도 이 말씀 앞에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과 이기심이 자리할 때, 제자의 길은 멈추고 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어린아이와 같이 낮은 자를 영접하고 겸손히 주님의 길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