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1), 예수님과 사탄의 세 가지 시험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되신 예수님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누가는 이어서 예수님의 족보를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록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시험의 현실
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마귀의 시험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의 인도 없이 살면 굳이 ‘시험’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마귀의 미혹에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순간, 유혹과 충돌이 시작됩니다. 이는 곧 옛사람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시험: 떡으로 살 것인가
사탄은 예수님께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3절).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시험하려는 말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면서 ‘그렇다면 네가 직접 해결해 보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돌을 떡으로 바꾸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후 실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라고 답하십니다(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신 사건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바로 이 믿음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몰두하게 만들어 하나님보다 필요 충족을 우선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가장 흔하고 강력한 시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을 자기 필요를 채우는 데만 쓰도록 유혹하는 것 말입니다.
두 번째 시험: 영광의 지름길
사탄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사탄에게 어느 정도 권세가 있음을 성경은 인정합니다(엡 2:2, 요 12:31 등). 그러나 그 권세는 잠시뿐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은 메시아가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탄은 그 고난을 건너뛰고 쉬운 길을 제시합니다. ‘단 한 번의 절’로 영광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3절을 인용하시며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8절).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하나님 뜻에 어긋나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유혹이 다가옵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지름길을 택하도록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경배할 수 없다는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세 번째 시험: 하나님을 시험하라?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 시편 91편을 인용하며 “뛰어내려 보라,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을 증명해보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을 인용하시며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답하십니다(12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며 하나님을 시험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천 년 동안 신실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해서’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과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시면 믿겠다”는 태도는 믿음이 아니라 불신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사탄의 전략은 여전히 교묘합니다. 때로는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고, 때로는 성령 없이도 이길 수 있다고 속입니다. 또 때로는 패배가 당연한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시험을 분별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