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되었을까? 역사와 상징 궁금한 모든이야기
갑자기 그런 생각하신 적 없으신가요? 왜 하필 무궁화일까? 예쁜 꽃들도 세상에는 참 많은데 흔하지 않은 그 무궁화가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일까? 하는 생각 말이죠. 무궁화에 얽혀 있는 역사 이야기와, 우리나라에 무궁화보다 벚꽃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알려드릴께요.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네요.

당연하지만 묻고 싶은 질문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무궁화’라고 대답합니다. 애국가 후렴구에까지 등장하고, 교과서나 각종 문양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무궁화가 법적으로 지정된 국화(國花)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무궁화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그 과정은 한국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긴 여정이었습니다.
나라별로 상징하는 국화(國花)가 있는 이유
역사와 전통을 담는 상징
국화는 단순히 예쁜 꽃을 정한 게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문화·정서를 담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의 무궁화는 “끊임없이 피고 지는” 특성 때문에 끈기와 불멸,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하게 되었고, 일본의 국화(菊花)는 황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죠.
국민을 하나로 묶는 정체성
국가마다 다양한 지역과 문화가 섞여 있는데, 국화라는 상징을 두면 국민들이 하나의 상징물 아래 모일 수 있어요. 태극기처럼 눈에 보이는 국기만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을 닮은 국화도 “우리가 같은 나라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외교와 상징적 의미
국화는 국제무대에서도 많이 쓰여요. 어떤 나라의 국화를 알면 그 나라의 가치를 존중하는 표현이 되기도 하고, 국가 간 교류 때 선물이나 장식으로 사용돼요. 이를 통해 나라 이미지를 부드럽게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국화는 나라의 “얼굴 같은 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랜 역사와 국민들의 마음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상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가 제정해서 국민적 합의를 만든 것이기도 해요.
무궁화가 나라꽃이 되기까지의 길
1. 이름의 뜻과 생태적 특징
무궁화라는 이름은 ‘무궁(無窮)’, 곧 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무궁화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질긴 생명력은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온 한민족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2. 오래된 별칭 ‘근역’과 ‘근화지향’
중국 고전 문헌에는 한반도를 가리켜 근역(槿域),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고 부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무궁화가 피어나는 땅’이라는 뜻으로, 이미 고대부터 한반도와 무궁화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대한제국 시기의 상징화
1890년대 대한제국은 근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상징을 도입했습니다. 이때 무궁화가 화폐, 훈장, 대례복, 외교 문서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됩니다. 1902년 제정된 ‘대한제국 애국가’의 표지에도 태극 주위에 네 송이 무궁화가 그려졌는데, 이는 무궁화가 국가의 공식 문양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4. 일제강점기, 민족 저항의 상징
나라를 빼앗긴 시절, 무궁화는 저항과 소망의 상징으로 자리했습니다. ‘무궁화가’가 널리 불리며, 무궁화는 민족의 끈기와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민들의 마음에 각인되었습니다. 일본이 국가 상징을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궁화는 되레 저항의 상징으로 더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5. 애국가 후렴구로 굳어진 상징
해방과 더불어 채택된 애국가(안익태 작곡)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무궁화를 한국인의 정체성 속에 더욱 강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국가를 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라꽃 = 무궁화’라는 인식이 강화된 것입니다.
6. 대한민국 수립 이후, 사실상의 국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무궁화는 법적으로 국화로 지정된 적은 없지만 국가 상징 전반에서 사실상의 나라꽃 역할을 해왔습니다. 중앙행정기관 소개 자료에서도 무궁화를 국화로 소개하고, 국회와 각종 공공기관 문양에도 무궁화가 꾸준히 사용되었습니다. 국화 지정 법안은 몇 차례 발의되었지만, 아직까지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무궁화는 이미 국민의 마음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나라꽃으로 굳어졌습니다.
끝없는 생명력, 끝없는 이야기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된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역사와 상징이 쌓아 올린 결과였습니다. 끝없이 피어나는 생명력,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끈기, 민족의 희망을 담아낸 저항의 상징. 이 모든 이야기가 모여 오늘날 ‘무궁화 = 한국의 나라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무궁화는 단순히 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신을 상징하는 살아 있는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무궁화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상징으로 계속 피어날 것입니다.
무궁화의 다른 품종 – 단심, 배달, 아사달
이름만 들으면 헷갈릴 수 있는데, 무궁화(韓: Hibiscus syriacus), 단심(丹心), 아사달(阿斯達) 은 사실 서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다른 특성을 가진 꽃이에요. 하나씩 정리해 봅시다.
1. 무궁화 (Hibiscus syriacus)
- 형태: 접시꽃과(아욱과)에 속하는 낙엽관목. 꽃은 7~8월에 피고, 흰색·분홍색·보라색 계통이 대표적이에요. 꽃잎은 보통 5장이고 중심부에 붉은 무늬(홍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특징: 한 송이가 하루만 피고 지지만, 여름 내내 계속해서 꽃이 피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무궁화(無窮花)’라 불리게 되었어요.
- 상징성: 끈기, 불멸, 생명력. 한국의 국화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 배달
▪️“배달”은 무궁화 품종 중 하나인 “배달계”에 속해 있는 특정 품종 이름이기도 하고, “배달계”는 순백색 홑꽃 무궁화들을 묶는 계통명이기도 해요.
▪️“배달”은 1972년에 서울농업대학교에서 육성된 품종이에요. 경남 거제 등지에서 자라는 흰 꽃을 가진 개체를 골라서 만든 순백색 홑꽃이에요.
▪️꽃 지름이 약 14cm 내외로, 무궁화 중에서도 꽃이 큰 편이고, 수세(생육력)가 좋고 추위에도 비교적 강한 특성이 있어요
▪️“배달계”는 꽃 중심부에 단심(붉거나 자색 등 중심 무늬)이 없는 순백색 무궁화를 통칭하는 계통이에요.
홑꽃·반겹꽃·겹꽃 다 포함되고, 꽃 모양 크기도 다양해요. 단순하게 “하얀 무궁화” 범주 안에 꽤 많은 품종들이 있는 셈이죠.
3. 단심 (丹心)
- 정체: 사실 단심은 무궁화의 품종 중 하나예요.
- 이름의 유래: ‘단심’은 “붉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꽃잎 가운데 붉은색 무늬가 또렷이 있는 품종을 가리킵니다.
- 특징: 흰색이나 연분홍색 꽃잎 중심에 진한 붉은 무늬가 퍼져 있어서 무궁화 가운데서도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옛 문헌에도 “무궁화 단심”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4. 아사달 (阿斯達)
- 정체: 아사달 역시 무궁화 품종 이름이에요.
- 특징: 꽃잎이 겹겹이 겹쳐진 겹꽃(八重花) 형태가 많고, 색은 연분홍에서 보라빛이 돌기도 합니다. 단심보다 화려한 인상을 주는 품종이에요.
- 이름의 의미: ‘아사달’은 고조선 건국 신화에서 단군이 나라를 세운 곳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민족적 상징성을 담으려는 의도가 컸습니다.
정리하자면, 단심과 아사달은 무궁화의 아예 다른 종이 아니라, 무궁화 품종명이에요. 쉽게 말하면, 무궁화가 큰 나무 이름이라면 단심, 아사달은 그 중 특정 모양과 색을 가진 품종이라고 보면 됩니다. 단심은 중앙에 붉은 무늬가 특징이고 아사달은 겹꽃 형태가 특징이랍니다.
대한민국에는 왜 무궁화보다 벚꽃이 많을까?
실제로 길을 걷다보면 무궁화를 참 보기 힘든 꽃입니다. 많이 보지 못해서 그런지, 가끔 접시꽃이나, 비슷한 꽃과도 헷갈리기도 하죠.
그런데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인데 길가에서는 잘 안 보이고, 대신 봄마다 온 나라가 벚꽃으로 뒤덮이잖아요. 여의도의 벚꽃길은 대표적이고요. 이게 “일본 잔재냐?” 하는 문제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답니다. 지금부터 쭉 알아가 볼께요.
일제강점기와 벚꽃 심기
벚꽃은 일본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예요. 일본에서는 ‘사쿠라’가 무사(武士)의 정신, 덧없는 삶, 국가를 위한 희생 같은 의미로 쓰였고, 메이지 시대 이후로는 군국주의적 분위기와 맞물려 전국 곳곳에 심어졌어요.
일제강점기 때 조선에도 벚꽃을 대량으로 들여와 관공서나 군사 시설, 주요 도로에 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벚꽃 = 일본의 흔적”이라는 인식이 생겼죠.
여의도 벚꽃길의 기원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길은 흔히 “일제 잔재”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해방 이후인 1960~70년대에 조성된 것이에요. 박정희 정권 시절, 여의도 개발 과정에서 도시 경관을 위해 일본에서 벚나무를 들여와 심은 게 시작입니다. 당시 정부는 도시를 현대적으로 꾸미고 국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봄 축제 명소가 된 거죠.
즉, 여의도 벚꽃길 자체는 일제강점기 직접 유산이라기보다는, 해방 이후에 일본 벚나무 품종을 수입해 조성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벚꽃의 이미지와 오해
해방 직후에는 벚꽃이 일본과 강하게 연결된 이미지 때문에 배척하는 시선도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일본 잔재”보다는 “봄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특히 1990년대 이후 벚꽃 축제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일본과의 역사적 맥락보다는 봄의 낭만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무궁화와 벚꽃의 대비
무궁화는 여전히 국화이지만, 관리가 쉽지 않고 해충 피해도 많아서 도시 조경용으로 대규모 식재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벚꽃은 자라는 속도도 빠르고 꽃이 화려해 사람들을 끌어들이죠. 그래서 “길거리엔 무궁화보다 벚꽃이 많은” 풍경이 만들어졌어요.
정리를 하자면, 벚꽃이 우리 도시에 많은 건 일제강점기의 영향 + 해방 후 개발 시기 일본 품종 수입이라는 두 가지 흐름이 겹친 결과예요. 그래서 일본 잔재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과 맞닿아 있지만, 여의도 벚꽃길 같은 경우는 해방 이후 도시개발 정책의 산물이기도 한 거죠.